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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나는 어떤 부모인가 생각한다 [Mother's Day, I Think of What Kind of Parent I Am]"

Chosun Ilbo, May 2009

대학 2학년 때 '중국사'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유교에 관한 부분을 가르치면서 우리 '미국 애들'에게 충격적인 예화를 읽게 했다. 고대 중국에서 아버지에게 욕한 소년이 산 채로 매장됐다는 이야기였다. 강의가 끝난 뒤 친구들과 나는 우리가 지금 고대 중국에 살고 있다면 절반은 이미 땅속에 묻혀 있을 거라고 농담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딸로서 나는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란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강의실을 떠난 지 6년 후 나는 시부모님의 '법적인 딸', 즉 며느리가 되었다. 5년 후 내 역할은 또 바뀌었다. 나 자신이 부모가 되었다. 나는 효도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부모가 공경받을 만한 분이어야 효도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른들을 존경하는 척할 수도 있고 심지어 착한 일을 하는 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난 일인가? 내 부모님은 어떻게 나로부터 존경을 받았나? 나는 내 아들로부터 어떻게 존경받을 수 있을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때부터 뉴욕서 자랐다. 부모님은 맨해튼에 조그만 보석 도매상을 차리고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가게를 지켰다. 토요일에는 3시에 닫는 대신 목요일은 7시까지 문을 열었다. 부모님과 우리 세 자매는 한가족으로서 퀸스의 단출한 아파트에서 가게 이야기와 학교 숙제, 일요일 교회 출석으로 이뤄진 삶을 살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단출함과 단순함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누렸던 축복이었고 우리가 부모님을 존경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부모님이 수차례 이혼을 거듭한 친구들의 극적인 삶―친권 소송, 대륙을 가로질러 오가는 이사와 전학, 약물 중독으로 점철된―에 비하면 내 어린 시절은 너무나 단조롭기까지 했다.

다른 많은 아이들과 달리 우리 자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놀러다니는 데이트도 없었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것도, 영화 구경도 없었다. 휴가도 생일잔치도 물론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음식과 안식처와 교육과 따뜻한 옷이 있었다.

그때 우리 세 자매가 해야 할 일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런 기본적인 삶의 필요를 충족하고 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문 기사를 읽는 것뿐이었다. 어떤 아버지들은 구조조정을 당할 수도 있었고, 어떤 어머니들은 아팠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정부가 붕괴될 수도 있었다.(다행히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열여섯 살 때 6·25전쟁을 겪었고, 원산에서 월남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일도 일어나는 게 세상이었다.

미국에서 한국 부모들에 대한 인상은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밀어붙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우리 부모님은 그들 자신에게도 엄격했다. 부모님은 우리와의 약속은 꼭 지키셨다. 아버지는 저녁 7시까지 오신다면 꼭 오셨다. 어머니는 토요일에 머리를 자르겠다면 꼭 그렇게 하셨다. 언젠가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제날짜에 갖다 주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무척 화를 내셨다. 우리의 의무를 명예롭게 지켜야 하는데 내가 그걸 어긴 것이었다.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 그런 부모님과 그런 세상은 재미는 없었지만 진실하고 믿음직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결코 우리를 상심케 하지 않으셨다.

마흔이나 먹은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만, 나는 우리가 인생에서 첫번째로 만난 사람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면 세상을 보는 우리 기준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첫번째로 만난 사람을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 노릇에 대한 내 생각도 자란다. 내가 딸로서 배운 것은 부모 노릇은 매일매일 해내야 하는 것이며 설사 그것이 지루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 아들은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기쁨을 주지만, 쉽지는 않은 순간도 수없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내 부모님도 이런 식으로 느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쉽지는 않았을 거야….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선물이며, 한편으로는 승인받지 못한 투쟁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는 부모를 욕하다 산 채로 땅에 묻힌 소년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지만, 이제 부모로서 나는 다른 것이 궁금하다. 아들에게 욕을 먹으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자식이면서 부모로 살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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