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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행복한가요?" [‘Are You Happy?']"

Chosun Ilbo, October 2009

십수 년 전, 변호사로 일할 때다. 한 경영 컨설턴트가 내게 "사는 게 행복한가요?" 하고 물었다. 업무 자리에서 흔히 듣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또 "그렇다면 얼마나 행복하냐"고 재차 물었다. 내가 좀 혼란스러워했던가 보다. 그는 "저는 해마다 문자 그대로 그래프를 그려봅니다" 하고 설명했다. 그는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던 종이 냅킨을 집어 들더니, 지난 5년간 자신의 행복 레벨을 표시했다. x축은 시기(1~5년), y축은 행복도(최소 1, 최대 5)로 설정하고, 점을 찍어 그래프를 보여줬다. 몇년 뒤 소설가로 변신한 나는 이렇게 행복을 그래프로 표시하는 아이디어를 소설에 인용했다. 한 사람의 삶과 만족도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생전 처음 본, 낯선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취와 도덕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키워졌고, 언제나 행복이 우선은 아니었다.

요즘은 행복과 삶의 만족을 측정하려는 관심이 높아졌다. 경제학자 베시 스티븐슨(Stevenson)과 저스틴 울퍼스(Wolfers) 교수가 올해 펴낸 '낮아지는 여성 행복의 모순'(The Paradox of Declining Female Happiness)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수인 두 사람은 미국 사회조사국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35년간 미국 여성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했다. 미국 여성들의 법적 지위가 향상되고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예전과 비할 수 없는 성취를 이뤘지만 주관적으로는 자기 삶의 만족도가 더 악화되었고 상대적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남성들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세계 97개국 35만명을 대상으로 한 세계가치조사에서 가장 행복도가 높은 나라는 덴마크였고 한국은 거의 밑바닥인 62위를 기록했다. 실망스러운 수준으로 보이겠지만, 한국의 행복도 서열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1946년부터 2006년까지 60년 동안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 한국이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행복도가 낮지만, 한국 그 자체만으로 보면, 지난 60년 동안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가파른 상승 곡선을 보여준다.

소설가로서 나는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한다. 비과학적인 방법론이긴 하지만, 모든 인터뷰에서 행복의 문제는 몇 가지 분명한 결과를 보여준다. 선진국 사람들이 후진국 사람들보다 늘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더 불행하다고 느낀다. 슬프게도 내가 만난 한국 여성들은 언제나 일과 가족에 치여 숨 쉴 틈 없이 허덕이고 있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르고 내가 유독 그런 사람만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흔도 안 된 여성들이 치열한 경쟁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등과 어깨 통증, 편두통, 유산, 암 같은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 다음 세대는 또 어떤가? 작문 지도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만난 많은 젊은이는 겉으로는 대담한 꿈을 말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았다.

삶의 만족과 행복은 나라마다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평가 패러다임은 분명 변하고 있다. GDP나 GNP가 보여주는 숫자 너머를 보는 것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경제적·사회적 진보를 재평가하는 척도를 만들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나,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이 새로운 평가 모델에 '웰빙(well-being)' 개념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다 그런 변화의 하나다.

한국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나는 전후 세대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을 포함한 전후 세대는 잿더미 위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매일매일 투쟁해왔다. 하지만 이제, 고도의 개발국 진영에 들어선 21세기 대한민국은 생존과 성공뿐 아니라 행복도 고려해야 한다. 하룻밤 새 한국의 성급한 기질이 바뀌지도 않을 테고 또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도 고도의 산업국가로 살아갈 한국의 발전을 위해 우리의 과업을 좀 더 선별할 필요가 있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좀 더 느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을 좀 덜 함으로써 좀 더 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나 좀 더 너그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숨 돌리고 더 나은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만한 자격이 우리에겐 충분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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